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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재해와 안전사고는 예수교의 신(神)이 내리는 벌]
글쓴이 : 제삼자  (219.♡.30.247) 날짜 : 2020-11-13 (금) 05:13 조회 : 211 추천 : 3 비추천 : 0
[자연재해와 안전사고는 예수교의 신(神)이 내리는 벌]


자연재해(지진이나 홍수 따위)는 물론이고, 건물과 교량이 무너져서 발생(인재 또는 안전사고)하는 사건으로 죽은 사람들은 모두가 회개치 않은 사람 자신의 죄 값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자연 재해와 안전사고(安全事故)는 예수교의 신(神)이신 여호와(또는 예수)께서 배후 조종하여 발생시키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예수의 말이다. 대박!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을 보자.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총독)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祭物)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 같이 해(害)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罪)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悔改)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또, 실로암(지명)에서 망대(望臺)가 무너져, 치어 죽은 18사람이 예루살렘에 거(居)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누가 13;1~5)


어떤 갈릴리(중동 지방)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고 있을 때, (로마 제국의) 총독 <빌라도>가 호위병들을 이끌고 와서 몇 사람을 죽였던 모양이다. 
이 참혹한 사건을 여기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빌라도(총독)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祭物)에 섞었다."라고.

이 비참한 억울한 사실을 몇 사람이 와서 예수에게 고했다고 한다.
다음은 이에 대한 예수의 대답이다.

"제사 지내다가 총독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죄가 더 많아서 죽은 줄 아느냐?
아니다. 너희도 회개치 않으면 그렇게 망할 것이다."
"망대(望臺)가 무너질 때, 치어 죽은 18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죄가 더 많아서 죽은 줄 아느냐?
아니다. 너희도 회개치 않으면 그렇게 망할 것이다."


제사를 지내다가 로마 제국이 파견한 총독에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사람도, 망대가 무너질 때 갑자기 깔려 죽은 18사람도, 
총독이 나쁜 사람이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안전사고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회개치 않아서 여호와(예수교의 신)가 내린 벌이요 죽은 자의 자기 죄값이다. 예수가 하는 말이다.
예수는 계속해서 더 강조하고 있다. "너희(다른 사람들)도 회개치 않으면, 그 사람들 같이 망하게 되리라."라고.


그러니까, 안전사고나 자연 재해로 불행을 만난 사람들은 동정의 여지 없이 회개치 않은 죄 값으로 죽은 셈이다.
자연 재해는 말할 것도 없고, 안전사고에 의한 불상사까지도 예수교의 신(神)이신 여호와(또는 예수)의 계획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매년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는 지진이나 홍수 등 자연 재해로 벌어지는 각종 불행을 도와주겠다고 벌이는 예수교의 봉사(?) 활동은 자기네 신(神)의 뜻을 배반하는 짓에 해당하는 짓이 아닐까? 결국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짓이기는 하지만.

어떤가? 위에서 펼쳐 놓은 <썰> 중에 없는 말을 제삼자(필자)가 꾸며 낸 것이 조금이라도 있는가?
아니면,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에 근거해서 정확하게 논해지고 있는가?
어떤가? 예수교를 악마의 종교라고 하면 틀린 말인가? 예수교를 복마전(伏魔殿=마귀가 숨어 있는 곳)이라고 하면 틀린 말인가?



[ 마음의 평정을 얻은 자는 어떤 위치에서도 성공자이다. ]


제삼자 (219.♡.30.247) 2020-11-17 (화) 09:57
[여호와(또는 예수)가 인간에게 베푸는 혜택]


예수교의 신(神=여호와 또는 예수)에 의하여 인간에게 베풀어지는 혜택(惠澤=사람들에게 주는 도움과 이익)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한다.

그 혜택들을 대충 열거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1) 은혜(恩惠=사랑으로 베풀어 주는 신세나 혜택), 
(2) 구원(救援=인류를 고통과 죄악과 죽음에서 구하는 일), 
(3) 대속(代贖=남의 죄를 대신하여 받음)=속죄(贖罪), 

(4) agape(예수교 신의 인간에 대한 사랑), 
(5) 천당(天堂=예수교의 신이 계신다는 천국), 
(6) 용서(容恕=지은 죄나 잘못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을 주지 않고 너그럽게 보아 줌),

(7) 영생(永生=천당에서 영원히 삶),
(8) 보상(補償=행한 것의 100배 이상의 보상),
(9) 행복(幸福=금세에서도 받을 행복한 삶). 등등......


예수교의 신(神=여호와 또는 예수)이 인간에게 베푸는 저 많은 혜택들을 지금 당장 모두 설명할 수는 없는 일이매, (1)번의 은혜(恩惠) 한 가지만을 여기에서 잠시 훑어 보기로 하자.
여호와(또는 예수)가 인간을 향해서 베푸는 은혜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히브리 백성을 위해서 베풀었던 <은혜> 한 가지를 여기에서 소개하려고 한다. 


예수교의 신(神)이신 여호와(예수의 아비)는 스스로 특별히 사랑하여 택하신 백성(選民)이 있다고 한다. 
그 선택된 백성이 히브리(이스라엘) 족속(지금의 예수쟁이들)이다. 그런데, 히브리 족속은 원래부터 자기네 땅(터전)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여호와(예수교의 신)는 히브리 족속에게 중동의 가나안 지방(지금의 팔레스타인)을 주겠다고 약속을 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그 가나안 지방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여러 원주민들이 터전을 잡고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원주민들을 모두 때려 죽이지 않고는 그 가나안 땅을 히브리 족속에게 내어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때, 여호와가 점을 쳐보니 500~60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면, 가나안 지방의 원주민들 사회에 죄악이 관영(貫盈=죄악 따위가 가득참)해질 것이라는 점괘가 나온 것이다.
옳거니, 그 때에 가서 가나안 지방의 원주민들을 모조리 때려 죽이게 하고서 히브리 족속들에게 그 곳으로 이주하여 살도록하면 되겠구나! 그러나 또, 문제가 남아 있었다. 

자기 땅이 없는 히브리 족속들로 하여금 가나안 지방으로 이주하기 전 500~600년 동안을 어디에서 어떻게 머물게 할 것인가?
마침내, 그 궁여지책으로 채택된 것이 바로 히브리 족속이 애굽(이지트)으로 들어가서 430년 동안 종살이를 하며 살도록하는 것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100~200년 정도는 이 나라 저 나라로 어영부영 떠돌이 생활도 하고.....


마침내, 세월이 꽈차서 가나안 지방의 원주민들을 모두 때려 죽여도 좋을만큼 죄악이 가득하게 되었던 모양이다. 대박!

어쨌든, 여호와의 택한 백성 히브리 족속은 남의 나라(애굽=이집트)에 들어가서 종살이를 하며 430년 동안 갖은 고난을 겪어야만 되었다고 한다.
마침내, 히브리 족속은 에굽에서의 종살이를 끝내고 가나안 지방으로 옮겨가서 원주민들을 모조리 때려 죽이고 들어가서 살면 되는 기회가 온 것이다.
그러나, 종(노비=남녀 노예) 신세는 그냥 간단하게 풀려나는 게 아니다. 수백년 동안 부리던 자기의 종을 쉽게 그냥 거저 해방시켜 줄 그런 주인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를 어쩐다?

여기에서 마침내, 예수교의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66권 중 하나인 <출애굽기>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바이블의 <출애굽기>는 여호와의 백성 히브리 족속이 애굽(이집트)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를 하다가 여호와의 인도를 받아서 탈출하여 신천지 가나안 지방으로 이주하는 장면을 그리는 내용이다.
히브리 족속이 종신세에서 벗어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전지전능한 재주와 능력을 가지신 신(神) 여호와의 도움이 절대로 필요했던 것이다.

히브리 족속이 출애굽(애굽에서 탈출)하기 직전, 여호와는 애굽에다 핵폭탄(커다란 재앙) 10방을 쏟아 부었다고 한다.
다른 모든 재앙으로도 애굽 전체는 초토화가 되었지만, 마지막 10번 째의 재앙은 모든 가정의 장자가 모조리 죽는 불행이었다.
이렇게 애굽 전체가 비극의 도가니에 잠겨 있을 때, 여호와는 히브리 족속에게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애굽 전체를 대상으로 <강도질>을 하도록 하라." 고. 헐! 아니, 대박!


여기 쯤에서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을 보자.

다음 말(바이블 내용)이 무슨 뜻인지 독자들은 차분히 음미해 보기 바란다. 그래야, 바이블의 진가를 알게 될 것이다.
바이블의 3가지 번역본(개역, 공동, 새번역)을 모두 가져와 봤다. 흉칙하고 악독한 내용을 숨겨 보려고 애쓰는 장면이 눈물겹다.
어쨌든, 예수교의 신(神=여호와)이 인간을 향해서 베푸는 <은헤>가 잘 나타난 바이블 구절들이다. <은혜>를 <환심>이란 단어로 묘하게 바꾸어 놓기도 했지만.....


**(1)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여호와의 앞잡이)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으로 (히브리)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의 구하는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출애굽기 12;35~36)-개역


**(2)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여호와의 앞잡이)가 일러 준 대로 에집트인들에게 은붙이와 금붙이와 옷을 내라고 하였다.
야훼(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에집트인들에게 <환심>을 사도록 하셨으므로 에집트인들은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내어 주었다. 이렇게 그들은 에집트인들을 "털었다."]

(출애굽기 12;35~36)-공동


**(3) [이스라엘 자손은 모세(여호와의 앞잡이)의 말대로, 이집트 사람에게 은붙이와 금붙이와 의복을 요구하였고,
주(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사람에게 <환심>을 사도록 하셨으므로, 이집트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의 요구대로 다 내어 주었다.
이렇게 하여서, 그(히브리 족속)들은 이집트 사람들에게서 물건을 "빼앗아 가지고 떠나갔다."]

(출애굽기 12;35~36)-새번역


* 10번의 핵폭탄(재앙)을 얻어 맞고 저항할 기운이 완전히 고갈된 상대에게 눈을 부릅뜨고 금품을 요구했더니, 요구하는대로 다 내놓더라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모두 예수교의 신(神)이신 여호와의 은혜(농간)로 베풀어지는 혜택이라는 것이다.
상대방에게서 강탈하고서 그것을 여호와(또는 예수) 쪽에서 은혜를 베푼 것이라 한다. 예수(교)쟁이들의 강도질이 상대가 베푸는 은혜라는 것이다. 얼마나 멋진 해석인가? 헐!
이만하면, 예수(교)쟁이들이 얼마나 고약한 잡놈들인지 알게 되었을 것이다. 예수교의 역사를 보아도 잘 알 수 있는 광경이다. 예수(교)쟁이들이 이 세상에 공존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어도 좋겠는가? 어떤가?

* 3가지 번역본 말미를 다시 보자.
(1)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개역
(2) "이렇게 그들은 에집트인들을 털었다."-----공동 번역
(3) "그들은 이집트 사람들에게서 물건을 "빼앗아 가지고 떠나갔다."]--새 번역

적어도 300만은 됐을(바이블 내용이 사실이라면) 히브리 족속들이 애굽 전국을 상대로 일시에 강도질을 하는 장면이다. 대박!
이상이 예수교의 신(神=여호와 또는 예수)이 인간을 향해서 배푸는 <은혜>라는 것이다.
이러하니, 예수쟁이들만 신나는 세상이 아니고 뭘까? 그러나 저러나 예수쟁이들은 정말로 사람 종류일까? 세상에나!





[예수교의 믿음의 크기와 종류]


** 알다--의식이나 감각으로 느끼거나 깨닫다. 교육이나 경험, 사고를 통하여 정보나 지식을 갖추다.
** 믿다--의심하지 않고 그렇게 여기다.

**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아무리 여러 번 들어도 실제로 한 번 보는 것보다는 못하다는 뜻으로, 실제로 경험하는 것이 중요함을 이르는 말.


예수교의 신(神=여호와 또는 예수)은 왜 자신의 존재(存在)와 능력(能力)을 사람들로 하여금 <알게> 하지 않고 <믿게> 하고 있을까?

(각설하고)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을 보자.


(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사도행전 16;31)


예수교는 어찌하여 "주 예수를 똑똑히 알라."고 가르치지를 않고 왜, "주 예수를 믿으라."고 채근(採根=재촉)을 할까?
<아는 것>이 <믿는 것>보다 훨씬 정확한 것이 아니던가? "믿는다."는 말은 "모른다."는 말과 동일(同一=구별됨이 없이 똑 같음)한 내용이다.
어떤 대상(특히, 神)에 대해서 99%를 믿는다는 사람과 1%를 믿는다는 사람은 그 대상(神)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무(全無=전혀 없음)하기는 마찬가지일 뿐이다. 그래 안 그래?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을 더 보자.


(2) [(예수) 가라사대, "너희 믿은이 적은 연고(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마태 17;20)

예수는 말하고 있다. 
"믿음이 겨자씨 한 알갱이만큼만 있어도 태산을 옮길 수도 있고, 하지 못할 것이 없다."고.
예수가 표현하는 말에 의하면, 신(神)에 대한 사람의 믿음에는 그 크기가 <겨자씨>만한 것도 있을 수 있고, <농구공>만한 것도 있을 수 있고, <지구 덩이>만한 크기도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왜, 그렇게 <믿음>의 크기가 다를까? 왜, 예수쟁이들마다 그렇게 믿음의 크기가 다 다를까?

그것은 <믿는다>는 말은 <모른다>는 말과 조금도 차이가 없는 동의어(同義語=뜻이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모르는 것에 대해서 겨자씨만큼 아는 척하는 사기꾼이나, 농구만큼 아는 척하는 사람이나 <모른다>는 사실에는 조금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쟁이들이 가지고 있다는 신(神)에 대한 그 <믿음>은 전혀 알 수 없는 <모르는 대상>에 대한 말장난이요 사기 행각일 뿐이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을 더 보자.


(3) [복음에는 여호와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17)


복음(福音=바이블)에는 예수교의 신(神)이신 여호와의 의(義=옳음 또는 은혜)가 들어 있는데, 이것 역시 믿음으로 시작해서 믿음으로 끝을 보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의인의 할 일이라고 한다.
예수교는 어찌하여 매사(每事=낱낱의 모든 일)를 <믿으라>는 말로 시작해서 <믿으라>라는 말로 끝을 보는가?
무엇이 무서워서 <알도록 하라>고 하지를 못하고, 무슨 꿍꿍이속을 숨겨 놓고 있기에 <믿으라>는 말만 줄기차게 강요하고 있을까?

어쨌든, 예수교에는 믿음의 크기와 종류가 많다.
굳건한 믿음, 흔들리는 믿음, 자라는 믿음, 식어가는 믿음, 덮어 놓고 믿는 믿음, 거짓 믿음, 진짜 믿음, 좋은 믿음, 마귀가 장난치는 믿음, 겨자씨만한 믿음, 꽉찬 믿음, 엉성한 믿음, 100% 짜리 믿음, 30% 짜리 믿음, 8각형 믿음, 4각형 믿음, 확신하는 믿음, 의심하는 믿음....등등, 그 믿음의 크기와 종류가 참으로 많다. 헐!
첫째도 믿음, 둘째도 믿음, 셋째도 믿음, 이렇게 강조되며 중요시되는 예수교의 믿음에 그 종류와 크기가 잡다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예수교가 정확하게 <알도록>하지를 않고, 모르는 것을 억지로 <믿도록>하는 데에 있다.
결국,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99%를 믿는 척하거나, 1%를 믿는 척하거나 말로만 그 크기가 다를 뿐, 내용에서는 <모른다>에 연결되어 있는 사기 행각이다. 이것이 예수교의 믿음이다. 
따라서, 예수교에는 <겨자씨만한 믿음>도, <굳건한 믿음>도, <좋은 믿음>도 모두 다 말로만 떠들어지고 있는 그래서 "예수교의 믿음은 영원히 팔아 먹어도 고갈될 염려가 없는 예수교의 명품이요 철저한 사기 행각이다." 대박!
제삼자 (219.♡.30.247) 2020-11-17 (화) 09:59
[예수교의 궤변]-(순환논리)


** 다음은 조금 쯤 정신을 가다듬어야 들리는 말이다.


바이블을(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을 보자.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바이블 밖에서 더들어지는 예수교 이야기는 100% 쓸모 없는 궤변이기 때문이다.
무조건, 예수교를 말하려면 덮어 높고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전제로 설정하고서 떠들어야 된다. 안다스뗑 모른다스뗑?


** 1) [(예수) 또, 가라사대, 
"이러므로 전에 너희(예수쟁이들)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여호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예수)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예수)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요한 6;65~66)


예수의 말에 의하면, "여호와((예수교의 신)의 허락 없이는 예수에게 올 수 없다."는 말이다.
즉, 사람은 예수교의 신(神)이신 여호와의 허락 여부에 따라서 예수쟁이가 될 수도 있고, 예수쟁이가 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사람이 예수를 믿고 안 믿고는 인간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예수교의 신(神)이신 여호와가 어떤 쪽으로 허락해 주느냐에 따라서 예수쟁이가 될 수도 있고, 예수쟁이가 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많은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 예수 곁을 떠나 다시는 예수와 함께 다니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의미 심장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예수를 믿고 못 믿고는 인간 개개인의 문제(또는 책임)가 아니라 여호와 쪽에서 결정할 문제라는 것이다. 결국, 예수쟁이가 되느냐 못되는냐 하는 문제는 "나(인간)의 책임이 아니다." 하고서 떠나는 게 아닐까?
대개의 예수쟁들은 "자기가 믿기로 결정하고서 예수쟁이가 됐다."고 착각하고 있을 껄? 그래 안 그래?
그러나, 예수쟁이가 되느냐 못 되느냐는 인간 개인이 결정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라 예수교의 신(神)이신 여호와 쪽에서 결정해야 되는 문제라고 되어 있다. (예수쟁이들! 이걸 알아 몰라?)
       

참고; ["나(예수)를 보내신 아버지(여호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예수)게 올 수 없으니...."] (요한 6;44)

역시, "예수교의 신(神)이신 여호와가 이끌지(허락하지) 아니하면 아무도 예수쟁이가 될 수 없다고 재차 강조하는 바이블 구절이다."
이 바이불 구절은 "인위적(人爲的=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벌이는 예수교의 전도 행각은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다."라고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가르침이다.
그런데도, 예수(교)쟁이들은 그 전도 행각을 지상 명령(至上命令=무조건 지켜야 할 도덕적 명령)으로 지키고 있다. 예수(교)쟁이들 중에 전도 행각에 열을 올리지 않는 자는 없을 것이다. 헐!


예수쟁이들 중, 위 아래를 불문하고,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내용을 제대로 알고서 지키는 예수쟁이가 몇 명이나 될까?

바울(예수의 최고 최대의 앞잡이)이 자기 아들이라고 칭할 정도로 뛰어난 예수쟁이에 <디모데>라는 녀석이 있다.
이 <디모데>에게 <예수교 전도 행각>을 간곡하게 부탁하는 편지가 있다. (한 번 보기로 하자.)

[(디모데야)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警責=정신을 차리도록 꾸짖음)하며 경계(警戒=미리 마음을 가다듬어 조심함)하며 권(勸=하도록 부추김)하라.] (디모데후서 4;2)

어떤가? 예수(교)쟁이들의 <전도 행각>은 여호와(또는 예수)의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 성립될 수 있는 활동인가? 아니면, 부질 없는 활동인가? 
여호와(또는 예수)를 믿고 못 믿고는 인간의 노력 여부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예수와 여호와가 서로 길을 열어 주어야 결정되는 문제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쟁이들은 자기네 교리(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를 따르고 있는 걸까? 아니면, 정면으로 거역하고 있는 걸까? 
방금, 위에서 바울(예수교 최고 최대의 사도)도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도 <전도 행각>을 간곡하에 권하고 있다.
바울(예수교 최고 최대의 앞잡이)은 예수(또는 여호와)의 지엄한 가르침을 알고 있는 걸까? 전혀 모르는 걸까?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더 보자.


** 2)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 14;6)

거듭되는 말이지만, "예수를 통하지 않고는 여호와(예수의 아비)에게 올(믿을) 자가 없다."는 가르침이다.


인용한 바이블 내용 **1)에서는 "여호와가 허락하지 않으면, 예수를 믿을 수 없다."고 되어 있고,
                     **2)에서는 "예수를 통하지 않으면, 여호와를 믿을 수 없다."고 되어 있다.

예수를 믿으려면 먼저 여호와의 허락이 있어야 하고, 여호와를 믿으려면 먼저 예수의 허악이 있어야 되고....이것이야 말로, 정확한 <순환 논리>요, 창과 방패 즉 모순(矛盾=서로 양립할 수 없는 관계)이 아닌가?

위 아래를 불문하고, 예수쟁이들은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의 어디를 읽으면서 예수쟁이 노릇을 하고 있는 걸까? 위선자들! 헐!





["제삼자" 님.....멋진 한 수 부탁합니다.]


다음 글은 <여호와>라는 닉네임을 가진 분의 질문에 대한 제삼자(필자)의 답글이었다. 벌써, 17년 전의 일이다.
한국 여행 때 꼭 뵙고 싶은 분이었으나, 제삼자(필자)도 시간이 없고, <여호와>님도 시간이 없어서 만나 뵐 수가 없었다. 
전화 연락은 2차례 있었다. 오래 전, 어느 게시판에선 제삼자(필자)가 가끔 씩 <여호와>란 필명으로 글을 올렸었는데, 다른 분이 <여호와>라는 필명으로 글을 올리고 싶어 하기에 제삼자(필자)가 그 이름 <여호와>을 포기했었다.
<여호와>님은 한 때 <한얼>님으로 글을 남기기도 했었다. 지금은 그 <한얼>님,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제삼자" 님.....멋진 한 수 부탁합니다.]


미국에는 명문 대학이 많습니다.
<아이비 리그(Ivy League)>라 해서 하바드, 예일, 펜실바니아, 프린스턴 등 8개의 명문 대학들이 있고, 그 외에도 MIT, 시카고, 스탠포드 등 유명한 대학들이 즐비하지요.
이런 명문 대학들에 입학을 하려면, 보통 3~4가지 정도의 엣세이(essay=논문, 수필)를 써서 입학원서와 함께 제출해야 됩니다.

그 중에는 학교 측에서 <엣세이 제목>을 제시하는 것도 있고, 입학 지원자가 <엣세이 제목>을 자유로 정하고 써야 되는 것도 있습니다.
엣세이를 쓸 때에는 주로 새로운 내용이면 좋고, 도전적인 내용이면 더욱 높게 평가된다고 합니다.

저의 큰 딸이 대학 입학 때, 엣세이를 쓰던 상황을 생각하면서 몇 자 적어 보려고 합니다.

우선, 이야기는 잠시 멀리 곁길로 갈 필요가 있습니다.
1982 년, 저는 <神의 蠻行은 누가 벌주나?>라는 책 속에서 예수교의 목사에게는 <녀석>이라는 명칭을 붙여 주고, 불교의 스님에게는 <중놈>이라는 명칭을 붙여 가며 종교를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저는 수 많은 목사들도 만났고, 동시에 수 많은 스님들도 만나서 밤을 새우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불교 쪽의 유명하다는 스님들은 만날 때마다 많은 불교 서적을 선물로 주며, "이 책도 읽어 보고, 바이블처럼 비판 좀 해주십시오." 라는 부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저는 그 때를 전후하여 불교 서적을 꽤나 많이 읽게 되었습니다.

불교의 많은 가르침 중에서도 제가 좋아하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의 한 가지를 큰 딸에게 들려 주면서 엣세이 쓰는데 참고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 내용을 여기에서 소개하려고 합니다.

-----------------------------------------------------------------------------------
[이 세상에는 3가지 그릇된 견해(見解=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생각이나 입장)가 있다.

그 하나는, 이 세상의 되어지는 모든 것이 신(神)에 의한 것이다.
그 둘은, 이 세상의 되어지는 모든 것이 운명(運命)에 의한 것이다.
그 셋은, 이 세상의 되어지는 모든 것이 우연(偶然)에 의한 것이다.

만약, 이 세상의 되어지는 모든 것이 신(神)에 의하여 주관되는 것이라면, 인간의 계획, 수고, 노력 따위는 아무 의미가 없게 된다.
이미 신(神)이 계획을 세워서 추진하는 세상에서 인간이 무엇을 어쩌겠는가?
착한 일을 선양(宣揚=널리 떨침)하고, 악한 일을 멀리 하려는 인간의 노력 따위는 아무 쓸모가 없게 된다.

마찬 가지로, 이 세상의 되어지는 모든 현상에 대하여 운명(運命), 또는 우연(偶然)을 대입하더라도 똑 같은 모순에 도달된다.
따라서, 신(神=불가사의한 존재), 운명(運命=초인간적인 힘), 우연(偶然=뜻하지 않게 일어나는 일) 등은 그릇된 견해라 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결국 인간의 활동에 달린 것이다. 이것을 필연(必然=반드시 그렇게 되도록 되어 있는 일)이라 한다.
반드시 원인이 있어 결과가 나오게 마련이다. 이것이 있어야 저것이 있게 되며, 저것이 없으면 이것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인류의 평화는 인간의 원형을 되찾는 일이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에는 인간 자체가 없다.]
-----------------------------------------------------------------------------------

저는 이상의 이야기를 큰 딸에게 들려 주었습니다.
마침내, 큰 딸은 이 이야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엣세이를 썼었습니다.
큰 딸 아이는 목표가 Wharton School(펜실바니아 대학교 경영대학)이므로 경영학과가 개설되어 있는 유명 대학 몇 개와 만약을 대비하여 다른 대학교 몇 곳에 더 입학 원서를 더 넣었었습니다.
10개 이상의 모든 대학에서 <입학 허가> 통지서가 왔었습니다.

프린스턴은 신학과(神學科)가 개설되어 있는 학교로 유명한 대학교입니다.
그래서 그랬던가, 큰 딸은 프린스턴에서는 3번 씩이나 불러 인터뷰를 했습니다. 이런 예는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인터뷰 때는 종교 서적을 소개하기도 하고, 종교 토론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으로 <여호와> 님께 대한 답변을 대신합니다.
-----------------------------------------------------------------------------------


<여호와=한얼>님이 인용하며 질문하신 바이블 내용은 다음 구절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언16장 9절)


예수교의 교리대로라면, 사람이 계획을 하더라도 결국은 여호와가 계획하는 것과 마찬 가지입니다.
위의 바이블 이야기는 묘한 궤변(詭辯=형식적으로 타당해 보이는 논증을 이용해서 거짓인 주장을 참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논법)입니다.
예수교의 신(神) 여호와가 인도하는대로 결과가 나오는 것이라면, 인간의 활동(또는 계획)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결과(또는 장래)를 모르는 인간은 계획을 세우고, 결과(또는 장래)를 아는 여호와는 인도를 한다. 이 얼마나 웃기는 궤변입니까?
다시 말해서, 결과(또는 장래)를 아는 전지전능자가 무능한 인간을 상대하여 장난치는 못된 짓입니다. (바이블 내용이 사실이라면.)

결국,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내용은 지적 수준이 낮은 종교 사기꾼이 꾸며 낸 허구(虛構=거짓, 가짜)입니다.





[제 아비 말이라면 철저히 청개구리 노릇하는 후레자식]


참고; 제삼자(필자)의 계산에 의하면, 
"예수보다 자기 아비(여호와)의 뜻을 그렇게 철저하게 어깃장(순순히 따르지 않고 반항하는 말이나 행동)을 놓는 후레자식(배운 데 없이 막되게 자라서 몹시 버릇없는 자를 욕하여 이르는 말)도 없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우선,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 2구절을 보자.


(1) [내(예수)가 율법(예수교의 신 여호와의 가르침)이나 선지자(여호와의 앞잡이)나 폐(廢=없애거나 그만둠)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完全=그 정확한 의미에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음)케 하려 함이로라.] (마태 5;17)

(2) [나(예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예수쟁이들)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태 5;44)


예수는 자기 아비 여호와가 만들어 놓은 율법(신의 이름으로 규정한 법)이나 선지자(여호와의 앞잡이)가 예언해 놓은 가르침을 폐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려고 이 세상에 온 것이라고 한다.
누가 무엇이라고 물어 보지도 않았는데 예수가 제 멋에 겨워서 지레 떠들어 대고 있는 말이다.

결국, 예수는 제 아비 여호와의 율법을 완전케 하는 게 아니라 산산 조각을 내어 부숴버리고 만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요한 1:17)"
이 말은 제 아비 여호와의 율법을 풍비박산시켜 버렸다는 의미이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중, 구약(舊約=예수가 태어나기 전의 여호와의 약속)의 내용 중에는 대단히 고약한(또는 악독한) 것이 보이곤 한다. 이럴 때 예수쟁이들은 주저 없이 변명을 늘어 놓는다.
"지금은 구약(舊約)시대가 아니라, 신약(新約=구약을 폐하고 예수에 의한 새 시대) 시대이다."라며 예수교의 치부(恥部=남에게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부분)를 숨기기에 급급하다.

구약 시대(舊約時代=예수의 아비 여호와가 활동해 놓은 시대)의 모든 것이 예수에 의하여 박살(깨어져서 조각조각 부서짐)나지 않은 것이 없다.


예수교에서는 "원수를 사랑하라." 고 가르친다 하여 여간 우쭐대는 게 아니다.
그러나, 이 예수교의 사랑 역시 예수가 제 아비 여호와의 뜻을 크게 어깃장 놓는 불효 막심(不孝莫甚=효성스럽지 못함이 매우 심함)이 아닐 수 없다.
옳든 그르든, 어쨌든, 예수는 제 아비 여호와의 가르침을 철저하게 어깃장을 놓던 청개구리였었다.

여호와는 자기가 택한 백성 히브리 족속 외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전도(傳道=신앙을 가지도록 인도하는 일)를 하거나 사랑을 베풀라고 가르친 적이 없다.
이방 민족은 무조건 다 때려 죽이라고만 되어 있다. (이 부분 너무도 복잡하여 여기서는 생략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느닷없이 예수가 나타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떠들어댄다. 정작 예수(교)는 원수를 사랑한 적도없다. (이 부분도 너무 복잡하여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몇 구절 더 보기로 하자. (해설은 하지 않기로 한다.)


(1) [태고적부터 계시는 너의 신, 너의 피난처, 당신(여호와)의 영원한 팔을 아래로 뻗으시고,
네(예수쟁이) 앞에서 <원수를 몰아내시며>, "진멸하라." 고 외치신다.] (공동)(신명기 32;27)

(2) ["네(예수쟁이) 손이 네 대적(원수) 위에 들려서 네 모든 <원수를 진멸하기를 바라노라.>"] (미가 5;9)

(3) [유다인(여호와의 택한 백성)이 칼로 그 <모든 대적(원수)을 쳐서 도륙하고, 진멸하고>,
자기(예수쟁이)를 미워하는 자에게 마음대로 행하고, .....] (에스더 9;5)

(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엘람으로 그 원수의 앞, 그 생명을 찾는 자의 앞에서 놀라게 할 것이며,
내가 쟁앙 곧, 나의 진노를 그 위에 내릴 것이며, 내가 또 그 뒤로 칼을 보내어 그를 진멸하기까지 할 것이라."] (예레미아 49;37)

(5) [주(여호와)께서는 나(예수쟁이)의 <원수들을 내 앞에서 도망가게 하시고>, 나를 미워하는 자들을
내가 진멸하게 하셨습니다.] (표준)(사무엘하 22;41)
<원수들을 내 앞에서 도망가게 하시고>, 나를 미워하는 자들을 내가 진멸하게 하셨습니다.] (표준)(시편 18;40)

어떤가? 예수쟁이들이여! 과연 예수교의 가르침이 "원수를 사랑하라."인가?
제 아비(여호와)의 가르침을 단 한 가지도 빠뜨리지 않고 어깃장을 놓은 예수! 이런 청개구리도 없을 것이다.

예수가 그럴싸한 말 몇 가지를 떠들어 놓은 것을 다 줏어 모아 봐도 20가지가 될까 말까 하다.
그것도 느닷없이 떠들어대는 근거 없는 횡설수설일 뿐이다.
그것이 장해서 우쭐대는 예수쟁이들이여! 이렇게 못난 짓들을 하고도 자랑스러운가?
언제 쯤에나 그 못난 짓들을 버리고 사람노릇을 하게 되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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